책소개
G. K. 체스터턴 탄생 150주년 기념 대표작,
『이단』『정통』『영원한 인간』 출간!
“체스터턴은 하나의 장르다.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빛을 발하는
‘오늘을 위한 명저’다.”
G. K. 체스터턴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복 있는 사람에서 출간하는 ‘G. K. 체스터턴 대표 3부작’은 가장 영향력 있는 변증서로 꼽히는 『이단』『정통』『영원한 인간』으로 구성된 시리즈다. 저자 특유의 언어적 기교와 통찰을 잘 살린 번역과 더불어 친절한 해설을 통해 매력적인 체스터턴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목차
01 서론: 정통의 중요성에 관하여
02 부정적인 정신에 관하여
03 러디어드 키플링, 그리고 세상을 작게 만드는 일에 관하여
04 버나드 쇼
05 H. G. 웰스와 거인들
06 크리스마스와 유미주의자들
07 오마르와 성스러운 포도나무
08 온화한 황색 언론
09 조지 무어의 심기
10 샌들과 단순함에 관하여
11 과학과 야만
12 이교주의와 로즈 디킨슨
13 켈트족과 켈트광
14 어떤 현대 작가들과 가족이라는 제도에 관하여
15 세련된 소설가들과 세련된 상류층
16 맥케이브와 신적인 경망
17 휘슬러의 재치
18 ‘젊은 나라’라는 오류
19 빈민가 소설가와 빈민가
20 결론: 정통의 중요성에 관하여
G. K. 체스터턴 연보
옮긴이의 글
책 속으로
오늘날 ‘정통’이라는 말의 쓰임새보다 현대 사회의 거대하고 고요한 악을 더 기묘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다. 지난날 이단은 이단이 아니라고 자부했다. 세상의 왕국과 경찰과 판관이 이단이었고, 이단은 정통이었다. 이단은 세상의 왕국과 경찰과 판관에 맞선다며 자랑하지 않았다. 맞서 일어난 쪽은 저들이었다. 군대는 무력으로, 왕은 차가운 얼굴, 근엄한 국정, 합리적 법치로 이단에 맞섰다. 모두가 길을 잃고 헤매는 양 같았다. 저마다 정통임을, 자신이 옳음을 자부했다. 저 울부짖는 광야에 홀로 선 사람, 그는 하나의 인간 그 이상이었다. 그는 하나의 교회였다.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를 둘러싸고 온 별들이 운행했다.
기억에서 잊힌 지옥의 온갖 고문도 그에게 이단임을 인정하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단임을 뽐내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의식적인 웃음을 짓고서 “난 꽤나 이단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박수를 기대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단’이라는 말은 더 이상 그릇됨을 뜻하지 않는다. 사실상 명민하거나 용감하다는 뜻이다. ‘정통’이라는 말은 더 이상 옳음을 뜻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릇됨’을 뜻한다. 이 모두가 의미하는 건 하나다. 자신이 철학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사람들이 무심해졌다는 것. 이단이라고 고백하려면 먼저 제정신이 아니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 자명한 이치다. 빨간 넥타이를 한 보헤미안이 정통을 내세우는 건 당연하다. 폭탄을 설치하는 폭파범은 그가 무엇이건 간에 스스로 정통이라고 여겨야 한다.
--- 「01 서론: 정통의 중요성에 관하여」 중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문학 작품을 읽는 것보다 나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더 가치 있다. 좋은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한 사람의 정신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반면에 나쁜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사람의 정신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좋은 소설은 우리에게 그 주인공에 대한 진실을 말해 준다. 나쁜 소설은 우리에게 그 작가에 대한 진실을 말해 줄 뿐만 아니라 그 독자들에 대한 진실을 말해 준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나쁜 소설은 우리에게 그것을 지은 동기가 오히려 더 냉소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알려 준다.
한 권의 책이 책으로서 더 부정직할수록 공문서로는 더 정직해진다. 신실한 소설 한 편은 특정한 한 사람의 단순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신실하지 못한 소설 한 편은 인류의 단순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깐깐한 결정들과 몇몇 재조정 사항들은 두루마리 문서들과 법전들과 경전들에 나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들과 마르지 않는 기력들은 1페니짜리 잡지와 반 페니짜리 통속 소설1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짜 교양을 지닌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한 사람이 좋은 문학에서 배울 것은 좋은 문학을 감상하는 능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반면에 나쁜 문학에서는 제국을 다스리고 인류의 지도를 살피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15 세련된 소설가들과 세련된 상류층」 중에서
출판사 리뷰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정통』 출간”
『정통』(Orthodoxy)은 근대 지성의 모순을 비판한 『이단』(Heretics)과 짝을 이루는 책으로,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관한 독특한 이해를 보여 주는 그리스도교 변증학의 대표적인 저서로 남아 있다. 『정통』에서 체스터턴은 자신이 그리스도교를 정통으로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현대 사상 전반에 깔린 이성주의와 회의주의가 갖는 오류와 한계를 지적하면서 지나친 이성의 강조는 오히려 광기에 가깝고, 무한히 자유로운 의심은 오히려 사유의 자살을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대 사상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는 정통의 진리로서 그리스도교를 제시한다.
추천의 글
G. K. 체스터턴은 삶을 가장 깊이 보고 드러낸 천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단』은 현대 사회를 형성하는 사상에 도전하며 우리가 가진 신념의 기초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철학을 비판하고, 상대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를 체스터턴 특유의 유머와 통찰로 접근한다. 『이단』은 당대의 관점을 문제 삼고 치밀하게 비판하지만 비판하는 인물들에 대한 존경심은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체스터턴은 진리, 전통, 도덕적 명확성이 진정한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새로움과 유행과 대세를 중시하는 현대 세계에서 기본 원칙이 왜 필요하며, 비판을 넘어 의미 있는 논의와 진리 추구를 왜 이어 나가야 하는지를 자신이 문제 삼는 예술가와 작가들을 통해서 보여 준다. 지적 진실과 철학적 깊이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 강영안 (한동대학교 석좌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단조롭기는 하지만 번뇌는 많지 않다. 갈림길 앞에 설 때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다.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열린 길 앞에 설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리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은 채 주저앉고 만다. 낯선 세계를 찾아가기보다는 익숙한 길 위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이 그러하다. 예수를 길이라 고백하면서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신학은 인접 학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담론 지평에서 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면서 신학의 삶의 자리인 교회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150년 전에 태어난 영국 사상가 G. K. 체스터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기독교 변증가로서 당대의 지식인, 예술가, 문학인들의 사상과 씨름하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이단』은 그들의 빛나는 성취를 따라가면서도 그들의 한계와 오류를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단’ 하면 사이비 종교가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체스터턴이 말하는 이단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체스터턴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의 안내를 따라 차분히 사상의 광맥을 탐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상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가 건네는 행복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 김기석 (청파교회 원로목사)
『이단』은 현대의 ‘이단들’, 러디어드 키플링, 조지 버나드 쇼, H. G. 웰스처럼 당대 영국 지성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식인들, 그리고 지적 흐름에 대한 비평서다. 하지만 이때 ‘이단’은 경멸어가 아니다. 체스터턴에게 ‘이단’은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적’, 그 목소리를 충분히 새겨들어야 할 ‘적’을 향한 명예로운 호칭이다. 그는 적을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고 ‘적’의 발언을 충분히 새기고, 그가 지닌 무기의 장단점을 찬찬히 해부한다. 그리고 그 무기의 쓰임새를 완벽하게 파악한 뒤 그 무기가 적 자신을 겨누게 만들어 자멸하게 만든다. 그렇게 그는 ‘정통’과 ‘이단’이라는 케케묵어 보이는 도식, 구시대의 유산이 되어 버린 것만 같은 도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놀랍게도, 이 진지한 탐구는 딱딱하고, 무겁고, 완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체스터턴은 ‘이단 중의 이단’, ‘적 중의 적’은 유쾌함과 미소를 잃고 창백해진, 완고한 인간의 정신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스도교 지성사, 사상사를 훑으면 쾌활함과 호방함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체스터턴만큼 그리스도교 신앙과 유쾌함이 나란히 갈 수 있음을 보여 주지 못했고, 선 굵은 유쾌함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덕목, 복음에 사로잡힌 이의 미덕일 수 있음을 보여 주지 못했다. 호방한 안내자 체스터턴과 함께 친애하는 적들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풍경과 마주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깨닫는다. 진정한 정통이란 이단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오히려 이단과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살아 있는 전통임을.
- 민경찬 (비아 편집장)
『이단』은 20세기의 저명한 기독교 지성인 G. K. 체스터턴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벌였던 논쟁을 담고 있다. 체스터턴의 논증은 조각이 많은 명화 퍼즐과도 같아서, 일부만 읽었을 때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직설적인 논리보다는 역설과 아이러니, 유머를 활용하여 비판의 대상을 해체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분이 모여 전체가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출간된 지 100년이 지난 이 책이야말로 현시대의 문제를 선명하게 포착한 진단서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이단』은 책 전반에 걸쳐 체스터턴의 예언자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다원주의 사회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것을 예측하고 우려한 그의 통찰력은 놀랍다. 확고한 선과 진리, 의미에 대해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 시대에 대해 체스터턴은 ‘악하다’는 정죄 대신 ‘약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우리는 머리로는 보편성을 부정하는 한편, 보편적인 기준에 맞춰 타인의 흠결을 발견하는 데 혈안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체스터턴의 이야기가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번에 복 있는 사람에서 출간되는 체스터턴의 세 대표작 『이단』『정통』『영원한 인간』은 모든 독자에게 큰 자산이자 지혜의 보고가 될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는 이 작품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느꼈던 감동과 경이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 오성민 (유튜브 채널 Damascus TV 운영자)
체스터턴의 기독교는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다.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의 모순을 구원해 주는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역설을 거침없이 전시하기 때문이다. 체스터턴은 하나의 장르다. 시대정신(‘이단’)들의 진부함과 ‘정통’의 혁명성을 그보다 더 선 굵게 통찰하고 위트 있게 묘사한 작가는 없다. C. S. 루이스가 경고했듯이, “건전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고자 하는” 이는 『영원한 인간』 같은 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말지어다.
- 이종태 (서울여자대학교 교목실장)
체스터턴은 러디어드 키플링, 조지 버나드 쇼, H. G. 웰스 등 당대 영국의 가장 날카롭고 자부심 강한 저자들을 소환하고 논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논쟁은 상대에 대한 존경과 인정에서 시작하지만 부분적인 것이 아닌 전체적인 진리를 향해 타협 없이 나아간다. 체스터턴은 중세 철학과 신학의 거장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신을 다시금 살려내고 있다. 그가 토마스 아퀴나스에 탄복하는 것은 이 ‘천사적 박사’ 안에 그리스도교가 오랜 역사 안에서 공들여 키워 오고 날카롭게 갈고닦은 진정한 이성의 정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이성은 신비 앞에 겸손할 줄 안다. 그는 이와 대조되는 ‘이단’의 정신인 상대주의와 주관주의와 과학주의에 고착되어 가는 당대의 지적 경향을 비판한다. 그리고 문학과 예술과 학문이 허영과 오만의 그림자에서 자주 잊는 중요한 문제를 다시 상기시킨다. ‘어떻게 인류가 인간성을 잃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역시 절박하며, 백 년이 지난 저자인 체스터턴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통해 이 세상에 전해진 참된 ‘겸손’의 의미를 숙고한다. 이는 사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며, 신비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역설을 마주하며, 체념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부단히 진리를 찾고 행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체스터턴의 말처럼 겸손은 “이 지구와 별들을 새롭게” 한다.
- 최대환 (천주교 의정부 교구 신부)
G. K. 체스터턴은 20세기에 기독교 전체를 변호한 가장 유능한 변증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데일리 뉴스』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칼럼을 쓰면서 글쓰기 기술을 발전시켰고, 1930년대에는 BBC에서 친근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언론인이자 소설가로서 유머러스하고 교조적이지 않은 글쓰기 스타일은 많은 추종자를 불러 모았고, 그를 기독교를 대표하는 지도적인 공적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우리는 체스터턴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명백한 출발점은 그의 명료하고도 명석한 글쓰기 스타일일 것이다. 신앙에 대한 접근하기 쉽고 흥미를 끄는 그의 설명은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았다. 변증 스타일 또한 독특하다. 체스터턴은 세계를 이해하는 한 방식으로서의 기독교를 일관되게 변호하지만, 그의 접근법은 기술적이거나 교조적이지 않다. 그는 일반인을 위해 신앙을 매력적으로 진술하며, 언론인으로서의 기술을 활용하여 한편으로는 신학 용어를 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풍부한 유비와 은유를 사용하여 세상에 대한 인간 공통의 경험과 기독교를 설득력 있게 연결한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체스터턴은 나의 영적 여정에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을 뿐 아니라 신앙의 기쁨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종종 기독교를 ‘반문화’라고 말한다. 체스터턴이라면 아마 “아니요, 기독교는 문화이며 이단이야말로 반문화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화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포함된다. 체스터턴이 『이단』을 썼지만, 그는 항상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했다. 우리 대부분은 ‘이단자’라고 하면 종교재판과 인상을 찌푸린 채 교수형을 집행하는 종교재판관을 떠올린다. 하지만 체스터턴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의 신학은 종교재판관들 못지않게 강력했지만,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연민과 존중과 유머였다. 교회가 이러한 기술을 습득할 수만 있다면 더럽혀진 교회의 평판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필립 얀시
체스터턴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에 대한 위대한 전복자다. 그는 통찰력으로 우리를 확장하고, 놀라운 역설로 우리를 흔들며, 재치로 우리를 기쁘게 한다.
- 오스 기니스
체스터턴은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소수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당대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그는 영원토록 후대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
- T. S. 엘리엇
체스터턴은 엄청난 천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세상은 그에 대한 감사의 말에 인색하다.
- 조지 버나드 쇼
체스터턴의 책은 이름을 거론할 수 있는 그 어떤 작가의 책보다 내 정신을 형성했다.
- 도로시 L. 세이어즈
G. K. 체스터턴은 특유의 재치와 지혜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회의론자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공한다.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