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
2021-06-07 |
페이지수 |
272 |
무게 |
336 g |
ISBN |
978-89-328-1830-6 |
| 목 차 |
추천의 글_이어령
들어가는 글
I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나│미켈란젤로가 그린 노인은 누구인가│에로스의 날개│신인동형설│신론과 존재론 그리고 서양문명
II 하나님은 존재다
01 존재란 무엇인가
하나님에게는 이름이 없다│지성도 넘고, 신비도 넘어│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너는 땅 위에 있다│그리스인들과 존재│자연의 사다리에서 존재의 사다리로│존재의 계층구조에서 사회적 계층구조로│존재는 창조주다│히브리인들과 존재│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술│존재의 바다와 ‘퍼텐셜’│하나님의 모습 상상하기
02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길’│페일리의 시계를 망가뜨린 사람들│마야의 찢지 못하는 베일│하나님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나│메타노이아-신비적 형태에서 일상적 형태로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책 속으로 |
기독교의 신 개념은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신 개념’만을 계승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스인들의 ‘존재론적 신 개념’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 둘을 종합한 것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건 신앙과 이성이라는 그 이상 간데없이 뻗은 양극을 휘어 하나로 결합하는 것 같은 극적인 종합이었습니다. 그 결과 다분히 종교적이면서도 분명 존재론적이고, 여전히 히브리적이면서도 여실히 그리스적인 기독교적 신 개념이 나왔습니다. “성서의 종교에는 존재론적 사상이 없다. 그러나 성서의 그 어떤 상징도 그 어떤 신학 개념도 존재론적 함축성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독일 출신 현대신학자 파울 틸리히의 말에도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하나님은 모든 존재물이 존재하는 바탕입니다. 즉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 안에서 존재를 부여받아 존재하지요. ‘하나님은 존재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주마저 자기 안에 포괄하며, 무소부재無所不在, omnipresence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할 뿐 하나님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자다’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존재는 또한 자신의 내적 법칙인 ‘말씀’으로 모든 존재물을 자기 안에 창조하지요. ‘하나님은 창조주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의 피조물들과 관계하며 그들을 오직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가지요. ‘하나님은 인격적이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1부 하나님은 누구인가’ 중에서
존재란 생성과 작용의 ‘탈시간화’된 모습이고, 생성과 작용이란 존재의 ‘시간화’된 모습에 불과합니다. 불변이란 변화의 탈시간화된 현상이고, 변화란 불변의 시간화된 현상일 뿐입니다! 시간을 매개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이 하나로 종합된 겁니다. 어때요? 지금까지 해 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유 방법이지요?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독특한 사유 방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히브리인들의 사유 내지 언어 사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인 야훼의 속성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며, 나아가 서양문명을 이해하는 데 디딤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냐고요? 그럼요! 우리가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술’이라고 이름 붙인 이러한 사유 방법과 논법을 모르고는, 예를 들어 근대 서구 지성인들이 활발한 토론을 벌이던 유명한 논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은 영원히 안식하느냐 아니면 부단히 활동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 답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기독교적 대답인 “하나님은 영원히 안식하면서 부단히 활동하신다”라는 말은 더욱 이해할 길이 없지요. 논리적으로 분명 모순되는 이 대답은 사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는’ 영원히 안식하지만, ‘시간 안에서는’ 부단히 활동한다는 것이지요.
-‘2부 하나님은 존재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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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신 개념은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신 개념’만을 계승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스인들의 ‘존재론적 신 개념’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 둘을 종합한 것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건 신앙과 이성이라는 그 이상 간데없이 뻗은 양극을 휘어 하나로 결합하는 것 같은 극적인 종합이었습니다. 그 결과 다분히 종교적이면서도 분명 존재론적이고, 여전히 히브리적이면서도 여실히 그리스적인 기독교적 신 개념이 나왔습니다. “성서의 종교에는 존재론적 사상이 없다. 그러나 성서의 그 어떤 상징도 그 어떤 신학 개념도 존재론적 함축성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독일 출신 현대신학자 파울 틸리히의 말에도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하나님은 모든 존재물이 존재하는 바탕입니다. 즉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 안에서 존재를 부여받아 존재하지요. ‘하나님은 존재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주마저 자기 안에 포괄하며, 무소부재無所不在, omnipresence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할 뿐 하나님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자다’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존재는 또한 자신의 내적 법칙인 ‘말씀’으로 모든 존재물을 자기 안에 창조하지요. ‘하나님은 창조주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의 피조물들과 관계하며 그들을 오직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가지요. ‘하나님은 인격적이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1부 하나님은 누구인가’ 중에서
존재란 생성과 작용의 ‘탈시간화’된 모습이고, 생성과 작용이란 존재의 ‘시간화’된 모습에 불과합니다. 불변이란 변화의 탈시간화된 현상이고, 변화란 불변의 시간화된 현상일 뿐입니다! 시간을 매개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이 하나로 종합된 겁니다. 어때요? 지금까지 해 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유 방법이지요?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독특한 사유 방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히브리인들의 사유 내지 언어 사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인 야훼의 속성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며, 나아가 서양문명을 이해하는 데 디딤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냐고요? 그럼요! 우리가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술’이라고 이름 붙인 이러한 사유 방법과 논법을 모르고는, 예를 들어 근대 서구 지성인들이 활발한 토론을 벌이던 유명한 논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은 영원히 안식하느냐 아니면 부단히 활동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 답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기독교적 대답인 “하나님은 영원히 안식하면서 부단히 활동하신다”라는 말은 더욱 이해할 길이 없지요. 논리적으로 분명 모순되는 이 대답은 사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는’ 영원히 안식하지만, ‘시간 안에서는’ 부단히 활동한다는 것이지요.
-‘2부 하나님은 존재다’ 중에서
근래에 지적 설계론을 두고 과학자들과 기독교 지식인들이 벌이는 논쟁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페일리처럼, 또는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처럼, 자연의 복잡성과 합목적성으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자연신학적 주장들에 대해서는 기독교가 예나 지금이나 적극 반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은 우선 지적 설계론을 내세워 창조설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전통적 교리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알려 주지요. 따라서 페일리의 논증을 상대로 삼아 기독교를 공격하는 과학자들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fallacy of straw man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해 줍니다. (…)
다른 하나는 다윈의 진화론이 반드시 무신론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전통적 기독교 신학-예컨대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칼빈 같은 대표적 학자들의 신학-은 ‘하나님은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창조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와 여지를 이미 오래전부터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이냐고요? 그럼요! 이제 곧 보게 되겠지만, 2,000년이나 축적되어 온 기독교 신학은 진화론을 포용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지도 편협하지도 않습니다.
-‘2부 하나님은 존재다’ 중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당신이 어떤 패러다임을 가졌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어떤 패러다임을 갖느냐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렸지요. 만일 당신이 기독교적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날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들이 될 겁니다. 알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논증을 펼친 것은 하나님의 현존을 ‘확인’하려는 목적보다는 하나님의 현존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신도들의 이성을 ‘설득’하려는 의도로 행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2부 하나님은 존재다’ 중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당신이 어떤 패러다임을 가졌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어떤 패러다임을 갖느냐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렸지요. 만일 당신이 기독교적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이라면-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랬듯이-세상에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날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이 하나님
의 존재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들이 될 겁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했다는 것을 내가 명확히 아는데 그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적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이미 ‘증명의 문제’가 아닌 것이지요.
-‘2부 하나님은 존재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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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리뷰 |
“‘있는 자’라는 명칭은 신의 가장 고유한 이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 책의 목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바르고 심층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선 오늘날의 지적 유행이 된 무신론을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나아가 지금까지 서양문명을 이끌어 왔고 또 앞으로도 이끌어 갈 기독교 고유의 가치들과 특유의 사유방식을 배우고 익히려 한다. 그것이 세계화의 거센 물결을 타고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보편화된 서양문명이 우리에게 떠넘긴 심각한 문제들, 예컨대 가치의 몰락, 의미의 상실, 물질주의, 냉소주의, 허무주의 등에 대한 진중한 해법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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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자’라는 명칭은 신의 가장 고유한 이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 책의 목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바르고 심층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선 오늘날의 지적 유행이 된 무신론을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나아가 지금까지 서양문명을 이끌어 왔고 또 앞으로도 이끌어 갈 기독교 고유의 가치들과 특유의 사유방식을 배우고 익히려 한다. 그것이 세계화의 거센 물결을 타고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보편화된 서양문명이 우리에게 떠넘긴 심각한 문제들, 예컨대 가치의 몰락, 의미의 상실, 물질주의, 냉소주의, 허무주의 등에 대한 진중한 해법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1부에서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생겼는가를 살펴본다. 관건은 하나님이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에 등장하는 노인처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우주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는가, 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처럼 가상 속에만 존재하는가 이다. 그리고 2부에서는 다마스쿠스의 요하네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이 “거대한 바다”라고 묘사한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 보고 그 의미를 살펴본다. 하나님이 존재라면, 그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에게는 왜 이름이 없는가, 또 그분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의 존재는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 도중에 그리스인의 존재 개념에 대해서, 그들이 구상한 ‘자연의 사다리’와 ‘존재의 사다리’에 대해서, 또한 히브리인의 존재 개념과 ‘야곱의 사다리’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들이 대변하는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서 알아본다.
또한 서로 상반·대립하는 그리스 철학과 히브리 종교의 종합에 대하여, 그것의 방안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시간화와 탈시간화의 마술’과 ‘이중적 논법’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어서 중세신학자들이 상상한 ‘존재의 바다’와 오늘날 양자물리학자들이 설정한 ‘퍼텐셜’Potential이 어떻게 유사하고, 또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도 살펴본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나님의 존재 증명인 ‘다섯 길’과 ‘페일리의 시계 유추 논증’에 대하여, 그것을 각각 반박하는 무신론자들과 그들의 이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본다.
이 책의 끝에서 결국 독자는 하나님의 존재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존재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곧 구원이자 은총이라는 것, 예수님께서 이 말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라고 가르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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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 |
이어령(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전 문화부 장관)
신이 죽었다고 외치는 시대를 거쳐 이제 인간이 신이 되리라 자처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신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식과 소유와 권력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정도로 증대하면 과연 우리가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신의 낙원이 도래한다는 것인가?
신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드러냈으며 각 시대는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오독해 왔는지에 관해 서양문명의 뿌리에서부터 근현대까지 통틀어 톺아보는 이 거대한 서사의 여정에서 결국 우리는 인간 자신의 참된 자화상에 도달한다. 칼빈은 하나님을 알아야 인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책은 바로 그 귀한 지혜의 현대판 증언이다.
이 책에 담긴 철학자의 치밀하고 오랜 지적 탐색뿐 아니라 그의 지혜 어린 조언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이 오만과 과잉, 야만과 공포의 시대 곳곳에서 감지되는, 인간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뿌리 깊은 욕망을 넘어설 실마리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참된 인간의 모습, 곧 신을 닮은 인간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다시 이야기로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용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깊고 풍부한 철학의 맛과 문학의 향기를 절묘하게 버무려낸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그에게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란 이름을 선사한 《알도와 떠도는 사원》 등 그의 책에서는 언제나 현대인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은 인문학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책에서는 논리학이 말과 글을 단련해 설득력을 키우는 도구로 새롭게 변신한다. ‘광고나 논술문, 프레젠테이션, 기획안, 보고서 등 설득이 필요한 모든 것에는 논리학이 숨어 있다’고 말하는 그는 논리학에 숨겨진 설득의 비법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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