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
한국어판 서문 014
추천의 글│싱클레어 B. 퍼거슨 017
서문과 감사의 말 025
1부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의 정의와 설명
01장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란 무엇인가? 033
02장 머리에서 마음으로 설교하기 063
03장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의 주된 요소들 085
04장 체험적인 설교자 113
2부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의 사례들
05장 종교개혁 설교자들│츠빙글리, 불링거와 외콜람파디우스 143
06장 종교개혁 설교자들│칼뱅 163
07장 종교개혁 설교자들│베자 191
08장 청교도 설교 서론 205
09장 청교도 설교자들│퍼킨스 225
10장 청교도 설교자들│로저스, 십스와 프레스턴 249
11장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공예배 지침서와 설교 273
12장 청교도 설교자들│굿윈과 셰퍼드 297
13장 청교도 설교자들│버니언 325
14장 네덜란드의 ‘진전된 종교개혁’ 서론 361
15장 네덜란드 설교자들│떼일링크와 판 로덴슈타인, 아 브라켈 389
16장 미국에서의 네덜란드 개혁파 설교│프렐링하이즌 415
17장 18세기 설교자들│핼리버턴과 에드워즈, 데이비스 437
18장 19세기 설교자들│알렉산더, 맥체인, 라일 465
19장 20세기 설교자들│비세와 로이드 존스 493
3부 오늘날의 체험적인 설교
20장 균형 있게 설교하기 521
21장 적용은 설교자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551
22장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효과적인 설교 577
23장 청중의 마음을 향해 복음을 설교하기 605
24장 거룩함을 위한 설교 637
주 668
찾아보기│주제 740 │성구 754
| 책 속으로 |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이십 년 이상 기다려 왔으며, 이 주제를 조금씩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 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난 수십 년 동안 개혁파의 복음적인 교회들 가운데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 곧 설교자의 마음에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마음으로 전달하는 설교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둘째, 이 중대한 주제를 다룬 책들 역시 찾기가 쉽지 않았다.
_ ‘서문과 감사의 말’ 중에서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는 우리로 하여금 이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매혹적인 분을 대면하게 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깊은 사악함에 직면하게 한다. 그리고 이 설교 가운데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피로 값 주고 사신 은혜의 말씀을 통해 죄인들과 진실한 언약을 맺으신다.
_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란 무엇인가?’ 중에서
매일 은혜의 방편에 의존하여 믿음과 회개를 실천할 때,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점점 더 깊이 체험하게 된다. 신선하고 힘 있는 설교를 위해서는 그분을 늘 새롭게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제임스 스토커는 이렇게 언급한다. “우리가 감당하는 사역의 능력은 은밀한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광대하고 다양하며 고유한 삶을 누리는 사람만이, 늘 신선한 기대를 품고 그분께 속한 일들을 전할 수 있다.” _ ‘체험적인 설교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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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이십 년 이상 기다려 왔으며, 이 주제를 조금씩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 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난 수십 년 동안 개혁파의 복음적인 교회들 가운데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 곧 설교자의 마음에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마음으로 전달하는 설교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둘째, 이 중대한 주제를 다룬 책들 역시 찾기가 쉽지 않았다.
_ ‘서문과 감사의 말’ 중에서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는 우리로 하여금 이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매혹적인 분을 대면하게 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깊은 사악함에 직면하게 한다. 그리고 이 설교 가운데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피로 값 주고 사신 은혜의 말씀을 통해 죄인들과 진실한 언약을 맺으신다.
_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란 무엇인가?’ 중에서
매일 은혜의 방편에 의존하여 믿음과 회개를 실천할 때,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점점 더 깊이 체험하게 된다. 신선하고 힘 있는 설교를 위해서는 그분을 늘 새롭게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제임스 스토커는 이렇게 언급한다. “우리가 감당하는 사역의 능력은 은밀한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광대하고 다양하며 고유한 삶을 누리는 사람만이, 늘 신선한 기대를 품고 그분께 속한 일들을 전할 수 있다.” _ ‘체험적인 설교자’ 중에서
츠빙글리의 설교 방식은 고대 초기 교부들의 설교 방식과 비슷했다. 이런 방식을 따르는 사역자들은 강단에 올라 지난번에 강론을 중단했던 부분부터 설교를 다시 이어갔다. 이때 그 사역자의 설교에 꼭 주제나 요점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시간이 마칠 때까지 설교를 이어간 뒤 한두 가지 적용을 제시했으며, 그 다음번에는 이때 중단했던 부분에서 설교를 재개했다. 일반적으로, 한 번의 설교에서는 신약의 경우 두 개에서 네 개의 절, 구약의 경우에는 네 개에서 일곱 개의 절을 다루었다. 이런 설교 방식을 정착시킨 것은 츠빙글리였으며, 이후에 살피겠지만 장 칼뱅도 이와 똑같이 행했다. _ ‘종교개혁 설교자들│츠빙글리, 불링거와 외콜람파디우스’ 중에서
칼뱅은 설교를 하나님이 구원과 은총을 베푸시는 정상적인 방편, 또는 일반적인 방편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내적인 사역자”이신 성령님은 우리를 “외적인 사역자”로 쓰셔서 말씀이 전파되게 하신다. 외적인 사역자들은 회중의 귀에 들리도록 소리 내어 말씀을 전하는 한편, 그 선포되는 메시지의 내용이 실제로 전달되게 하시는 분은 바로 내적인 사역자이신 성령님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 내용이 되신다. _ ‘종교개혁 설교자들│칼뱅’ 중에서
제네바의 교회들은 엄격하고 규칙적인 설교 일정을 준수했다. 매주 드리는 주일 예배뿐 아니라, 주중에 특별 새벽 예배가 종종 열리곤 했다. 칼뱅의 생애 말엽에는 제네바의 목회자들이 일주일에 스물일곱 편의 설교를 전한 적도 있었다. 설교는 보통 한 시간 정도 지속되었으며, 설교자들이 이 시간을 준수할 수 있도록 모래시계가 사용되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칼뱅 자신은 상당히 짧은 분량의 설교를 전했다. _ ‘종교개혁 설교자들│베자’ 중에서
설교자는 사람들의 비판이 두렵다는 이유로 단순히 자신이 택한 본문 내용을 설명하고 몇 가지 교리상의 문제를 풀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부드러운 위로”와 강력한 “책망”을 통해,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에게 성경의 약을 실제로 발라 주어야 한다. 설령 죄악된 이들이 그런 책망을 “모욕”으로 받아들일지라도, 우리는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해야 한다. _ ‘종교개혁 설교자들│베자’ 중에서
청교도들의 설교 프로그램은 좋은 설교를 장려하는 목회자 훈련의 형태를 띠었다. 청교도들은 성직자들이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청교도들은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그리고 하버드 칼리지 같은 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런 학교들은 젊은이들에게 설교의 측면에서 뚜렷한 청교도적 확신을 심어 주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다. _ ‘청교도 설교 서론’ 중에서
청교도 설교자들은 회중의 마음에 열정적으로 구애했다. 그들의 설교는 다정하고 열정적이며 낙관적인 성격을 띠었다. 월터 크래독은 자신의 회중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주님이 우리를 보내신 것은 갤리선에서 노를 저을 노예들을 모으거나, 말뚝에 묶어 놓을 곰을 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여러분에게 구혼을 하려 하십니다. 곧 여러분이 그분 자신과 혼인하도록 이끄시려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힘 있는 설교와 개인적인 호소, 간절한 기도와 성경적인 설득, 엄숙한 경고와 기쁨에 찬 삶의 모습 등 가능한 모든 방편을 동원하여, 죄인들이 파멸의 길에서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인도하려 했다. _ ‘청교도 설교 서론’ 중에서
십스의 관점에서 볼 때, 설교는 단순히 가르침을 전달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설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일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성경의 교리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그들을 달래고 구슬리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구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십스는 설교자를 신랑의 친구, 곧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와 혼인을 맺도록 인도하는 자로 묘사한다. _ ‘청교도 설교자들│로저스, 십스와 프레스턴’ 중에서
패커는 1948년에서 1949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언급한다. “당시 나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현대인에게도 유일한 생명줄이 되시는 그분의 복음에 관해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보고 또 느꼈다. 나는 그 체험을 통해, 역사적인 개신교에서 설교를 우리가 은혜를 얻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최상의 방편으로 여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어떤 과장된 행동도 취하지 않고, 늘 자신의 논증을 제시하는 토론자나 진단을 내리는 의사처럼 메시지를 전했다.” _ ‘20세기 설교자들│비세와 로이드 존스’ 중에서
교리를 다루는 데 전념하도록 부름받은 자로서, 설교자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철저한 자세로 신학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 목수나 기계공들이 연장을 장만하듯, 설교자는 자기만의 서재를 가꾸어야 한다. 과거의 위대한 교사들을 여러분의 스승으로 삼으라. 장 칼뱅이나 리처드 십스, 존 버니언 같은 거장들 중 한 사람을 골라서 그의 저작들을 한두 해 이상 탐독하고, 그의 신학이나 특히 그의 설교들에 깊이 빠져 보기 바란다. 이와 더불어 그 인물의 생애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그의 전기들을 읽어 보라. 신학교 재학 시절에 여러분은 교수들의 가르침을 받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게 된다. 그러니 신학교를 마친 뒤에는 종교개혁자와 청교도들 아래서 배움을 이어가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_ ‘적용은 설교자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중에서
대중적인 설교자들이 죄와 심판에 관한 언급을 꺼리듯이, 대중적인 전도자들 역시 회개의 주제를 소홀히 여기곤 한다. 오늘날 서구 문화권에서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두 가지 수준으로 구분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 이 그릇된 생각에 따르면, 이른바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회심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반면 ‘영적인’ 엘리트 신자들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성경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이 이분법에 맞서, 우리는 회개를 향한 성경의 요청을 단호하게 전파해야 한다. 회개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영적인 성장 역시 불가능하다. _ ‘청중의 마음을 향해 복음을 설교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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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리뷰 |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년 이상을 기다려 왔다.”
탁월한 신학자 조엘 비키의 40년 설교 경험의 모든 것!
― 이찬수·화종부·김형익·김운용·우병훈, 싱클레어 퍼거슨·마이클 호튼 추천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주지만 마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설교를 들으면 많은 지식을 얻게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행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최악의 경우, 그런 설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지식을 심어 주어 우쭐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나은 경우에도 그런 설교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열기가 없는 빛일 뿐이다. 또 여러분은 마음에 감동을 주지만 머릿속에는 자극을 주지 않는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설교는 우리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흥분과 열의에 사로잡혀 기분 좋게 예배의 자리를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얻는 것은 지식 없는 열정이다. 그런 설교에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맛이 가득하지만, 영양가는 전혀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결국 싫증나기 전까지) 그 설교를 더 들으려고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설교는 청중의 삶에 영양분을 주지 못하며, 그들이 성숙을 향해 자라가도록 이끌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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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년 이상을 기다려 왔다.”
탁월한 신학자 조엘 비키의 40년 설교 경험의 모든 것!
― 이찬수·화종부·김형익·김운용·우병훈, 싱클레어 퍼거슨·마이클 호튼 추천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주지만 마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설교를 들으면 많은 지식을 얻게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행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최악의 경우, 그런 설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지식을 심어 주어 우쭐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나은 경우에도 그런 설교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열기가 없는 빛일 뿐이다. 또 여러분은 마음에 감동을 주지만 머릿속에는 자극을 주지 않는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설교는 우리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흥분과 열의에 사로잡혀 기분 좋게 예배의 자리를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얻는 것은 지식 없는 열정이다. 그런 설교에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맛이 가득하지만, 영양가는 전혀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결국 싫증나기 전까지) 그 설교를 더 들으려고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설교는 청중의 삶에 영양분을 주지 못하며, 그들이 성숙을 향해 자라가도록 이끌지도 못한다.
이런 설교의 두 가지 병폐에 담긴 가장 큰 비극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사랑의 중대한 연관성을 끊어 버린다는 데 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이는 단순히 우리에게 진리와 사랑이 모두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복음의 진리는 그 열매로 사랑이 생겨나기 전까지 원래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복음의 진리 없이는 사랑이 생명력 있는 뿌리를 지닐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이 싹틀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생생히 일깨워 주셔야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설교이며, 이 책의 주제는 바로 그 설교에 관한 것이다.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는 성경의 진리를 전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혼 깊숙이 비치게 한다. 이는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으로 부르기 위함이다. 그 설교는 우리의 심령을 깨뜨리는 동시에 새롭게 빚어내며, 우리를 기쁨에 들뜨게 하는 동시에 겸허하게 만든다. 체험적인 개혁파 설교는 우리로 하여금 이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매혹적인 분을 대면하게 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깊은 사악함에 직면하게 한다. 그리고 이 설교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은 피로 값 주고 사신 은혜의 말씀을 통해 죄인들과 진실한 언약을 맺으신다.
[독자 대상]
- 개혁주의와 청교도 전통의 설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학생- 설교에 대한 무력감 혹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설교자
- 예배의 부흥, 특히 설교를 통한 회중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목회자와 사역자
- 조엘 비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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