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 2017-12-25 |
---|---|
페이지수 | 328 |
무게 | 431 g |
ISBN | 978-89-88042-85-4 |
최근 한국 기독교계의 부패가 심각하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 금전적, 성적 스캔들을 일으키고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돈 선거로 회장을 뽑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불신자들보다 더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의심이 생긴다. 그들이 과연 그리스도인인가?
_100쪽, “한국 교회의 부패와 기독교적 세계관” 중에서
바울 사도는 헬라인이 찾는 지혜는 십자가의 도에 비해서 어리석은 것이며(고전 1:22~25), 당대의 학문을 대변한 철학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속임수나 다름없는 것으로 취급하였다(골 2:8). 2세기 때 교수 터툴리아누스는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고 하면서 “(철학의 도시) 아테네와 (믿음의 도시)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물음으로써 믿음의 세계에는 지식이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알기 위해서 믿어라”(crede, ut intelligas)고 했고, 안셀무스도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고 했다. 모두 믿음이 지식에 우선하고 믿음이 있어야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지 지식의 종교가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주장을 펼친 바울과 터툴리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가 모두 당대의 뛰어난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는 기독교 신학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철학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고, 칼뱅은 23세 때 쓴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에서 라틴 저자만 해도 55명을 인용했다. 그들 외에도 기독교는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카이퍼, 바르트(K. Barth), 틸리히(P. Tillich), 니버, 도여베르트, 루이스 등 위대한 신학자들과 지식인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그 후 역사에서 기독교가 누렸던 위상이 과연 가능했겠으며 심지어 믿음과 지식의 관계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었겠는가? 거대한 세속 문화의 흐름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만신창이의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모든 고등종교 중에 가장 불신을 가장 많이 받고 있고, 세상의 조롱과 조소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자란 반지식적이고 반지성적인 경향이다.
_104~105쪽, “기독교는 무식한 종교가 아니다” 중에서
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의 세계에서 당면한 가장 난처한 문제 중 하나가 동성애가 아닌가 한다.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도 분명히 동성애를 큰 죄악으로 보고 있다. 거기다가 비그리스도인들 상당수도 동성애는 미풍양속에 어긋나며 자연스럽지 못하고, 순수하고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고, 동성애자가 늘어나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가정이 생겨날 것이라 하여 반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을 비도덕적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마땅히 보호해야 할 소수자로 보고, 그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 못지않게 정의에 어긋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한다.
거기다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단과 신학자들이 있고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할 뿐 아니라 동성 결혼식을 주례하며 심지어 동성 간 결혼한 사람들이 성직을 갖는 것도 허용하는 교단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살인을 정죄하고 금지하듯 기독교 교파나 신학자들이 모두 동성애를 반대한다면 그나마 입장 설정이 쉬울 텐데 그렇지 않으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처신이 더욱 난감해지는 것이다.
_154쪽, “동성애는 하나의 가시” 중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이 있다. 면죄부의 오류를 지적한 루터의 95개 조항은 당시에 막 개발된 인쇄술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전국으로 확산되고, 천주교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개혁의 추진력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도 인쇄술이 없었다면 그처럼 많이 제작되고 빨리 확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쇄술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인쇄술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물론 단순히 그 때문에 개혁교회가 새로운 기술에 호의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모든 지적 활동의 자유를 제한했던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무너진 것이 과학과 과학기술을 포함한 모든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크게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오늘의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은 종교개혁 덕에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Beruf)’이란 루터의 주장과 노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칼뱅의 가르침, 그리고 칼뱅이 빌린 돈에 대해서 이자를 허용한 것은 상업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거기다가 칼뱅은 절제를 강조한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제네바 시에서 보석 매매를 금지하여 보석공들이 시계 제작으로 직업을 바꾼 것이 오늘날 스위스 시계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어쨌든 종교개혁이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엄청나게 큰 공헌을 한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_189~190쪽, “4차 산업혁명, 경계하며 지켜보자” 중에서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
나는 젊었을 때부터 80세가 된 지금까지 조그마한 꿈이 있는데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그 꿈은 각 분야의 그리스도인 전문가들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상황과 사건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평가하는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특히 성도들이 그런 상황과 사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침을 주어야 하는 설교자들에게 좋은 안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오늘을 사는 기독 지식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처한 사회 상황과 오늘날 일어나는 사건들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서 한두 사람이 이런 임무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한 한 많은 그리스도인 전문 학자들을 발굴하고 동원해 각기 자기 분야의 상황과 사건들을 담당해야 한다. 이것은 동시에 기독 학자들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 지식을 이용하고 기독교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와 훈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그리스도인 학자들에게 부탁해 보았는데 아직도 별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
그런데도 나는 그런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계속 주장한다. 그것은 성경의 하나님은 우주의 한구석만 지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 우주 자체를 창조하시고 자연과 역사와 세계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죄에서 구속되어 구원을 받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명을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단순히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인간을 위시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 자신 뿐 아니라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다른 학자들이 시도하지 않겠다면 나 혼자라도 시도해 보고 싶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우리시대의 선견자 송봉호 교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실련 공동대표를 거쳐 세밀연 이사장과 영동교회 • 한영교회 • 다니엘교회 협동 설교자로, 겸손과 명쾌함이 깃든 말씀을 외치고 살아온 특별한 사역자이다. 영문학(서울대),신학(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그리고 철학(화란 자유대학)을 공부하고 서울대 사범대학 사회철학교수와 한성대 이사장을 거쳐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제 6대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윗물은 더러워도」, 「별수 없는 인간」(이상 샘터), 「고통받는 인간」(서울대 출판부), 「울림 열림 어울림」(철학과 현실사)등의 저서를 통해 신앙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격조 높으면서도 아주 평이한 언어로 풀어낸 저지이며, KBS, MBC, SBS와 그 밖의 방송매체를 통해서 자녀교육, 인성계발, 시민사회 도덕교육에 관해 많은 명강의를 한 강사이다. 부인 박성실 권사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첫번째 리뷰를 남겨주세요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